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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히어로즈, 아동안전시민상에 이어 지난 12월 10일 정세균 국무총리로부터 표창을 받은 구창식님 가족.

평범한 가족의 비범한 이웃사랑 이야기
시민영웅 구창식·장현숙가족

- 울산 주상복합 아파트 화재사건 -

2020년 10월 8일 밤 울산광역시. 136가구가 거주하는 지하 2층, 지상 33층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강풍이 불었던 그 날, 불은 외장재인 알루미늄 복합패널과 이를 붙이는 데 쓰인 가연성 접착제를 타고 삽시간에 건물 전체로 번져갔다. 강풍, 야간, 고층이라는 악조건 속에 자칫 큰 인명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었지만, 기적적으로 경상자만 발생했고 불은 16시간 만에 진화됐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몸을 던져 이웃을 구출한 한 가족이 있었으니, 바로 구창식·장현숙 부부와 그의 장남 구모선님 가족이다. 그들을 만나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들어봤다.

화재 당시의 주상복합 아파트. ⓒ나무위키

Q. 울산지방경찰청의 수사 결과, 8일 오후 11시 14분경에 처음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화재 발생 후 언제, 어떻게 이를 인지했나?
A. (구창식) 당시 늦은 밤이라 잠을 자고 있었다. 아들이 안방문을 두드리며 불이 났다고 대피하여야 한다고 해서 옷을 입고 나와 현관문을 여는데 문이 안 열렸다. 아마 불길로 인해 문틀에 변형이 온 모양이었다. 아들과 함께 있는 힘껏 미니깐 그 틈 사이로 검은 연기와 불똥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때 큰불이 났구나, 큰일 났구나 하고 생각했다.

Q. 당시 주변의 상황은 어떠했나?
A. 이미 현관을 통해 대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거주하고 있는 28층에 화재대피소가 있어서 안방의 창문을 통해 가족과 대피를 하고 보니 주변에 불똥과 검은 연기가 사방으로 흩날리고 있었다. 당시 대피소에는 우리 가족 이외엔 아무도 없었기에 이웃들의 안전이 걱정되었었다.

구창식님 가족과 이웃들이 대피통로로 이용했던 좁은 창문.

Q. 가족들과 대피하는 과정에서 이웃을 구출하는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고 들었다.
A. 사실 당시의 상황이 자세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어디선가 도와달라는 울부짖음이 들려서 보니깐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임산부가 보였다. 아래층에 사시던 분인데 불길과 연기 때문에 밑으로 대피하지 못하고 위쪽으로 올라온 가족분이었다. 그분들이 29층 테라스로 대피한 것을 보고 때마침 A형 사다리가 있어 사다리를 일자로 펼치고 아들과 함께 올라가 아이와 가족을 사다리를 통해 데리고 내려왔다. 그 가족 중에는 몸이 편치 않으신 70세의 노모가 함께 계셨는데 난간을 넘을 수 없어 주춤하고 계셔서 난간을 부수고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실 수 있게 도왔다. 그 당시에 진짜 정신이 없었던 게 갓난아기인 줄 알았던 아이가 일주일쯤 흐른 뒤에 보니 유치원생이었다.

구창식님과 아들 구모선님이 이웃을 구출할 당시에 사용했던 사다리와 장애물로 작용해 부신 난간의 모습.

Q. 그 외에 이웃 18명을 구조한 것으로 알고 있다.
A. (장현숙) 불이 난 것을 인지하고 우선 근접한 이웃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연기가 가득 차 복도 안에서 문을 두드릴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이 피신한 것처럼 이웃들의 창문을 두드리며 피신하라고 소리 질렀다. 앞집 주민분들은 밖의 상황을 전혀 모르고 계셨고 불이 났다고 알려드리니 나갈 곳을 못 찾아 당황하셨다. 그래서 저희처럼 작은 창문으로 대피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동안 남편은 29층 난간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7명의 가족분들을 사다리로 내려올 수 있도록 도왔다. 그 후에 30층에 계시던 4명의 가족분들이 불이 점차 크게 번져 대피할 곳이 없자 작은 창문을 통해 2~3층 높이를 뛰어내리려고 하셔서 남편이 초등학생 남자아이가 뛰어내리는 것을 맨손으로 받아내고, 다른 사람들은 남편과 아들이 이불을 펼쳐 받아냈다.

이웃을 받아냈던 흔하지만 소중했던 이불.

Q. 당시 강풍으로 불이 크게 번지고 있었다. 보통 이런 상황이라면 생각은 있어도 남을 돕는다는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A. 우리 가족은 운이 좋게도 피난층에 살고 있어 28층 대피소에 제일 먼저 나올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이 모두 나오고 주위를 둘러보니 화재의 규모가 너무 커서 겁이 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미처 대피하지 못한 분들이 계셨기에 본능적으로 그분들께 도움이 되고자 움직였던 것 같다.

Q. 가족 모두가 위험을 무릅쓰고 이웃을 대피시키는 데 앞장섰다. 이 같은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원동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특별한 것은 없다. 우리 가족 또한 평범한 시민들이다. 이전엔 뉴스에서 사람들 구하신 분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그 상황을 닥치니 본능적으로 움직이게 되더라. 다른 분들도 그 상황에 닥치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당시 불똥이 여기저기 떨어지고 있었고 바닥엔 유리 파편이 나뒹굴고 있는 상황에서 맨발로 뛰어다녔었다고 하는데 부상은 없었나?
A. (구모선) 대피할 때 급한 나머지 미처 신발을 못 신고 나왔다. 여기저기 뛰어다녔는데 딱히 큰 부상은 입지 않았다. 깊게 베인 곳은 다행히 흉만 졌다.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화재가 크게 번지게 된 원인을 제공했던 외벽.

Q. 지상으로 내려와서도 병원보다 소방본부를 먼저 찾아 주민들의 구출상태를 확인하셨다고 들었데, 진심이 느껴졌다.
A. (구창식) 당시 33층에 대피를 하지 못하시고 계셨던 가족이 있었는데 그 집은 거실까지 불이 붙은 걸 봤었다. 어찌 됐는지 걱정이 되었는데 모두 무사히 나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감개무량했다.

Q. 지난 10월 14일 포스코청암재단으로부터 포스코히어로즈에 선정되어 따님 앞으로 장학금 1,000만원을 상금으로 받았는데, 이마저도 어려운 이웃을 돕는 성금으로 전액 기부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었나?
A. (장현숙) 애초에 무언가를 바라고 했던 행동들이 아니었고, 포스코청암재단에서 전화를 받고 제가 가족들에게 상금을 모두 더 좋은데 기부하는 것이 어떨까 의사를 이야기하니 가족 모두가 제 뜻에 따르겠다고 했다. 딸도 그 돈은 내 것이 아니니 엄마 알아서 좋은 곳에 사용하길 바란다고 했다. 딸은 1학년 때부터 현재까지 학교 홍보 대사 등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너무 만족해해서 부모로서 너무 기특하고 대견스럽다. 감사할 뿐이다.

구창식님 가족과 송철호 울산시장. 이재민인 구창식님 가족이 울산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성금 1,000만원을 기부했다.

Q. 구창식님과 가족분들의 활약, 그리고 소방대원들의 노력으로 다행히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실제 피해 규모는 상당히 컸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우선 모두들 힘쓴 결과 인명피해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당일에 강풍주의보가 있을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었기 때문에 불길이 종잡을 수 없이 번져 상층부까지 이곳, 저곳, 예상치 못하게 번지면서 불을 잡기가 더 어려웠던 것 같다. 그리고 고가 사다리차가 울산지역에 없어 타지역에서 오느라 늦게 도착 한 점, 강한 바람으로 헬기가 당일에 뜨지 못하고 다음날 아침에 도착 한 점, 그리고 저희와 같이 내부구조가 복잡한 주상복합에 대한 사전 답사나 매뉴얼이 없었던 점. 소화전 거리문제 등으로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던 점은 아쉽다.

10월 8일 21시의 제14호 태풍 찬홈(CHAN-HOM)의 모습. 일본 가고시마 남동쪽 약 360km 부근 해상에서 중심기압 965hPa, 최대풍속 36m/s의 세력 ‘강’의 태풍으로 북동진하고 있었다. ⓒ기상청

Q. 이번 화재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신속한 진화를 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나?
A. 우선은 고층의 화재에 대비한 고층 사다리차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스프링클러가 터지고 난 뒤에 고층의 경우 소화전에서 물이 나오지 않는 점에 대한 대안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건축 시 모든 자재는 불연성 자재를 쓰도록 법으로 정해졌으면 한다. 오래된 아파트의 경우 이미 가연성 자재가 쓰인 아파트들이 많은데 그에 대한 대책 마련도 있다면 좋지 않을까 싶다. 덧붙여서 입주민과 관할 소방서가 연계해서 정기적인 소방교육을 진행하고 고층 아파트나 주상복합 아파트와 같이 구조가 복잡한 경우는 관할 담당자 중 한 명을 지정해 사전에 답사를 하고 매뉴얼을 작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Q. 사회적으로 큰 귀감이 되고 있지만 화재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클 것 같다.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
A. 살아서 나온 것 자체가 다행이지만 돈으로도 못사는 우리 아이들 추억을 태운 것이 너무나 아깝다. 지금도 생각만 하면 눈물이 앞서지만 원망할 곳도 없다.

화재 10일 전 구창식님 가족의 거실. 벽에 걸린 가족사진이 애처롭게 느껴진다.
화재 후 거실의 모습. 가족과의 추억을 잃은 것이 안타깝지만 구창식님 가족은 대신 다른 소중한 것들을 구해냈다.

Q. 현재 피해 보상이나 복구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A. 현재 정밀안전진단업체를 입주민들이 상의해서 선정한 상태고, 곧 진단이 시작될 예정이다. 복구공사는 정밀진단이 완료된 후에 진단결과를 토대로 시공사를 선정하도록 계획하고 있다. 보험사 측의 보상 등은 전유(개인 인테리어)부분, 가재도구 부분을 선지급 신청해 놓은 상태인 것으로 알고 있다.

Q. 7차례의 현장 감식을 시행했지만 화재의 원인이 밝혀지진 않았다. 대책위원회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A. 물론 화재의 원인도 중요하지만, 원인보다는 앞으로의 나아갈 길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대책위원회는 최대한 주민들이 서로 잘 소통하여 여러 세대의 합의점을 찾아주려고 노력 중이다. 건물의 안전진단을 철저히 하고, 화재로 인해 취약해진 건물을 잘 보수하고 보강해서 주민들이 다시 입주한 후에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가 아닐까 싶다.

Q. 이번 일을 계기로 가족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더욱 돈독해졌을 것 같다. 끝으로 가족과 이웃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평상시 잘 알고 지내던 분들도 계시고 인사 정도만 했던 분들, 처음 뵙는 분들도 계시는데 저희를 믿고 같이 포기하지 않고 힘썼기에 다 같이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입주민들이 이젠 집으로 돌아가 행복한 날만 있을 거라고 믿는다. 모두들 똘똘 힘을 뭉친다면 화재도 이겨내고, 코로나도 이겨낼 수 있다. 극복할 수 있다. 힘내시길 바란다. 모두들 파이팅!

구창식·장현숙 가족의 거실에 있던 가족사진.

가족이 함께했던 소중한 추억들이 집이라는 물질적인 공간과 함께 모두 재로 사라져버린 사실은 시민영웅이라는 훈장으로도 회복될 수 없는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가족들에게 남아 있는 단 하나의 의미는 이웃들을 구했다는 자부심보다는 함께 살아남아 현재를 공유할 수 있다는 그 자체의 가치가 아닐까 싶다. 구창식·장현숙 가족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가족이 아닐까?

글. 최호철(소방안전플러스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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